벽초 홍명희가 쓴 월남 이상재 묘지명 공개|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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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이상재 선생 유고에 수록된 벽초 홍명희가 쓴 묘지명. 이상주 박사 제공

‘이상재가 병이 들었을 때 사람들이 근심하고 돌아갔을 때, 애도한 이유는 이상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바다 밖의 특이한 향기가, 바람과 파도에 진액(眞液)을 씹히고 침식당해도, 유독 향기가 멀리까지 이른다. 이는 대중들에게 감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충북 괴산 출신으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내고 대하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1888∼1968)가 월남 이상재(1850∼1927) 서거 후 그를 기리며 쓴 묘지명이 처음 공개됐다. 이상재는 구한말 YMCA를 이끌고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 항일민족단체인 신간회 등을 조직한 대표적인 애국지사다.

서지학자인 이상주 박사(전 중원대 한국학과 교수)는 지인인 고서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는 ‘월남 이상재 선생 유고(遺稿)’에서 홍명희가 쓴 이상재의 묘지명을 찾아 28일 본보에 공개했다. 묘지명은 죽은 사람의 덕과 공로를 글로 지어, 돌에 새기거나 도자기로 구워 무덤 속에 넣은 것을 말한다.

묘지명은 한문으로 쓴 518자 분량이다.

이 박사가 번역해 요약한 묘지명 내용을 보면 ‘월남 이상재는 한 시대 큰 어른이며 학문과 인품이 훌륭해 사람들이 그 문하에 찾아들어 마을의 거리를 메웠다. 이상재가 돌아갔을 때는 서울과 시골의 사람들이 조문하고 예를 갖추고 조심했다. 신도비는 정인보가 짓고 묘지명은 홍명희에게 지으라고 위촉했다. 이상재가 홍명희를 사랑해 주고 홍명희가 이상재를 잘 모시었다’고 적혀 있다. 또 ‘신간회(新幹會)를 처음 창립하여 월남 이상재 공(公)을 장의(長義)로 삼을 때 이상재가 사양하지 않았다. 업무추진 능력과 포용력이 있어 위촉한 것이다’는 내용도 있다.

이 박사는 “홍명희가 이상재의 죽음에 대해 국민이 근신하고 애도한 이유를 이상재의 학문과 인품, 항일투쟁 업적을 높이 인정했기 때문”이라며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을 한 애국선열들의 호국정신을 본받아 국가안보 정신을 견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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