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대입 뺨치는 日중학 입시 열기… ‘교육 학대’ 신조어까지 등장[글로벌 현장을 가다]|동아일보


1일 입학시험을 치른 일본 도쿄 가이세이중학교에서 학부모들이 시험을 보러 고사장에 입실하는 초6 수험생 자녀를 응원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명문 사립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입시 준비에 나서는 초등학생이 매년 늘어나며 과열 양상을 빚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이상훈 도쿄 특파원이상훈 도쿄 특파원

“너무 떨지 말고. 간바레(힘내).”

1일 오전 일본 도쿄 아라카와구 가이세이(開成)중학교 앞. 아침 일찍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은 다들 긴장한 표정이었다. 아빠 엄마는 6학년이지만 아기 티를 벗지 못한 자녀들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기며 학교로 들여보냈다. 한 엄마는 아이가 이미 보이지 않는데도 한참 허공을 보며 열심히 기도했다. 아이의 뒷모습을 휴대전화로 찍는 아빠의 표정에선 만감이 교차했다.》




이날 일본에선 가이세이중을 비롯한 주요 사립 중학교들이 입학시험을 치르며, 중학 입시 전쟁이 본격 시작됐다. 1969년 중학 입시가 폐지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지금도 사립은 입시를 치른다. 과거엔 일부 ‘치맛바람’으로 국한됐지만,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과열 양상까지 나타난다. 한국 대입 뺨치는 뜨거운 중학 입시 열기에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교육 학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중학 입시 성공이 명문대 보장”

이날 입학시험을 친 가이세이중은 자타 공인 일본 최고 중학교로 꼽힌다. 일본의 주요 명문 사립학교는 중고교를 합쳐 6년제로 통합한 ‘중고일관교(中高一貫校)’로 운영한다. 가이세이는 고교에서 100명을 추가로 뽑지만, 중학교 입학생 300명은 고3까지 그대로 간다. 고교 신입생을 아예 안 뽑는 일관교도 많다. 다른 학교에서는 한 명도 나오기 어렵다는 도쿄대 합격자가 가이세이에서 지난해 146명이 나왔다. 42년 연속 전국 1위다.

그러다 보니 중학 입시는 명문 학벌로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계단’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좋은 중학교에서 좋은 고등학교를 거쳐 명문대 진학으로 이어지는 꽃길을 걸을 수 있다. 일부 대학 부속 중고교에는 대학으로 갈 수 있는 특별전형 코스까지 있다. 와세다중이나 게이오중을 들어가 와세다고, 게이오고를 거친 뒤 와세다대, 게이오대에 진학하는 방식이다.

일본 전체 중학교에서 사립 중학교 학생 비중은 7.7%다. 나머지는 대다수가 추첨으로 집 근처 공립 중학교에 간다. 언뜻 사립이 적어 보이지만 명문교가 몰린 도쿄만 놓고 보면 25.5%에 이른다. 진학률 차이는 더 크다. 도쿄 중심지로 도쿄대 등 명문 대학이 몰려 학구열이 높은 분쿄구는 초등학교 졸업생 49.5%가 사립중에 진학했다. 추오구(43.1%), 미나토구(42.3%) 등 집값 비싸고 교육 환경 좋은 이른바 ‘도쿄 8학군’ 지역의 사립중 진학률 역시 다른 곳보다 몇 배가 높다. 여기에 대입 전형 다양화 등 일본도 대입 제도가 개혁된 것도 사립학교 인기를 부추긴 원인 중 하나다.

일본도 저출산 장기화로 학생 수는 갈수록 줄어든다. 하지만 중학 입시에 도전하는 초등학생은 되레 늘고 있다. 입시정보 업체 ‘수도권 모시센터’에 따르면 2014년 4만3000명 수준이던 중학 입시 수험자는 지난해 5만2600명으로 증가했다. 센터는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영어나 정보기술(IT) 등 전문성 교육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는 현 상황을 사립학교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적이 좋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사립학교들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거나 드론,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한 과목을 개설하기도 한다. 도쿄에 있지만 캐나다에서 ‘해외학교’ 인가를 받아 일본과 캐나다 중학교 졸업 자격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학교도 있다.

올해 중학 입학시험을 치는 도쿄의 초등 6학년 엄마인 마쓰모토 씨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몰린 학교에서 서로 경쟁하며 자극 받으면 실력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예전 같진 않지만 잘나가는 동창들과 탄탄한 인맥도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공교육 방치-교육 학대 논란도


일본 언론은 해마다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한국의 입시 열기를 대대적으로 보도해왔다. 고사장 앞에서 후배들이 목이 터져라 응원하거나 경찰차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입실하는 모습은 일본 TV에서 자주 소개돼 일본인들도 익숙하다.

이런 요란한 풍경은 없지만, 일본의 중학교 입시 열기는 한국 대입 못지않다. 한 입시전문가는 “한국 초등 사교육은 멀리는 대입, 가깝게는 특수목적고 등의 입시를 준비하는 ‘사전 준비’에 가깝다면, 일본 중학 입시는 12∼13세 때 인생의 큰 진로가 결정되는 ‘본선’”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성적순으로 명문중에 가고 이 아이들이 수월성 교육을 받아 명문대까지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 중학교 입시는 평생의 학벌을 좌우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일본에선 “대학 입시는 중학 입시의 패자부활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중학교 입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입학 시험은 초등 6학년 졸업에 맞춰 치르지만, 시험 준비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사실상 시작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주부는 “3학년부터 시작하는 게 보통이고, 4학년부터 시작하면 늦었다고 한다. 5학년 때 시작하기에는 무리”라고 귀띔했다.

유명 입시학원 체인인 E사의 중학 입시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초1·2 대상 ‘주니어 코스’부터 초3·4 ‘중입 준비 코스’, 초5·6의 학교 수준별 입시 대책 코스 등이 있다. 고학년 주 3회 수업 기준 학원비는 월 6만 엔(약 54만 원) 안팎이다. 최대 월 20만 엔(약 180만 원)이 넘는 일대일 강습도 인기다. 학원 인근은 오후 9시 전후 끝나는 수업에 맞춰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최근 자녀를 중학교에 보냈다는 40대 신문기자는 “초등학생 때인 1980년대에는 한 반에 2, 3명 정도가 입시 준비를 했지만 요즘엔 2, 3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입시 준비를 한다”며 “어렸을 때는 중학 입시를 준비하는 애들이 신기했는데, 지금은 학원에 안 다니는 애들을 이상하게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도쿄 중심 지역에서 입시로 가는 사립중 진학률이 40%대라는 건 실제 입시 준비생은 2배가량으로 많다는 뜻이다.

중학교 입시가 지나치게 과열돼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최근 도쿄 주요 초등학교의 6학년 수업 파행 운영이 대표적 사례다. 사립 진학률이 높은 도쿄 중심 초등학교는 1월에 학급 학생 3분의 1가량이 입시 준비나 컨디션 관리 등을 이유로 결석했다. 주요 중학교가 시험을 치른 이달 초에는 절반가량이 학교를 빠진 곳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는 최소 수업일수마저 채우지 않고 학원이나 개인과외로 향하는 경우도 많았다. 학교에서 ‘코로나 결석’으로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문부과학성이 2021년 국회 답변을 통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입시 명목의 결석은) 의무교육 취지와 어긋난다. 등교가 원칙”이라 촉구했지만, 그다지 소용은 없었다.

최근엔 일본에서 이런 중학교 입시 전쟁을 두고 ‘교육 학대’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아사히신문이 최근 보도한 실태에 따르면 공부를 강요한 부모가 초3 자녀를 의자에 묶어둔 사례가 있다. 아이에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부모 노릇을 그만두겠다”고 폭언하거나, 입시 스트레스를 받은 초등 5학년 어린이가 원형 탈모증에 시달린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9월 서부 사가현에선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에게 맞으며 폭언을 듣고 공부했던 학생이 국립대에 입학한 뒤 “복수하겠다”며 부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만든 사건도 발생했다. 피의자는 1심에서 징역 24년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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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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