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은 밀어 두고, 넉넉한 신년 파티[미술을 읽다/양정무]|동아일보


랭부르 형제 ‘베리 공의 아주 호화로운 기도서: 1월’(1411∼1416년).

화려하게 장식된 방을 난로가 따뜻하게 덥혀 주고 잔치 음식은 넉넉히 준비되어 있다. 여기서 근사하게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신년 파티를 흥겹게 즐기고 있다. 600년 전 프랑스의 새해맞이 장면을 담은 그림인데 우리의 설 명절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미술사학자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미술사학자

주인공은 오른쪽에 앉아 있는 베리 공작이다. 고대 로마의 황제처럼 얼굴은 정측면으로 그려져 있고, 머리 바로 뒤에는 원형의 난로 가리개가 그의 머리를 후광처럼 감싸고 있다. 그 위엔 백합과 곰, 백조가 새겨진 그의 휘장이 드리워져 있다. 널찍한 테이블을 가득 메운 음식들이 잔칫날 분위기를 크게 고조시킨다. 강아지 두 마리가 올라가 음식을 먹고 있지만 누구도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 바로 아래에서는 그레이하운드로 보이는 견공에게 시종이 직접 음식을 먹여 주기도 한다.

베리 공은 지금 “어서 오라(Aproche, Aproche)”고 소리치며, 새해를 맞아 신년 인사를 위해 방문한 친지, 신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당시 프랑스 궁정의 신년 파티에서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우리가 세뱃돈을 주고받았던 것처럼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한가득 선물을 들고 집에 돌아갔다.

사실 이 그림은 베리 공이 소장한 기도서에 들어간 삽화로,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그린 것이다. 당시엔 구하기 어려운 울트라마린이라는 파란색 물감부터 정교한 표현까지 들어가 너무나 호화롭게 장식됐다. 당시에도 이 책을 ‘아주 호화로운 기도서(Trs Riches Heures)’로 불렀고, 오늘날에도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나라마다 대표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보급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총 412쪽으로 이뤄진 이 기도서에는 1년 열두 달의 풍경이 달력처럼 그려져 있는데, 지금 보는 신년 파티 장면은 1월의 모습이다. 그림 위에 반원형 아치가 그려져 있는데 1월의 별자리와 함께 날개 달린 말이 끄는 마차를 탄 태양신이 빛나는 태양을 손에 들고 힘 있게 하늘을 누비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장면은 1415년 1월 1일 모습이라고 한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과의 백년전쟁과 흑사병이라는 재앙적 팬데믹으로 고통받던 때였다. 이때 마침 분열하던 프랑스의 지역 영주들이 1414년에 평화조약을 맺게 되자, 새해를 더욱 희망적으로 맞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림 속 주인공 베리 공은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셋째 아들로 아버지와 함께 전장을 누볐기에,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갈망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 간절한 마음으로 새해맞이 파티를 어느 때보다 더 성대히 준비했고, 결과물로 바로 이처럼 아주 호화로운 그림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거의 600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졌던 신년 파티 장면이지만, 그림 속 인물과 반려동물들 모두 세상 근심을 잠시 잊고 신년 파티 분위기에 푹 빠져든 모습이다. 다가오는 설 명절에 우리도 이 그림처럼 잠시라도 세파를 잊고 넉넉한 마음으로 평화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미술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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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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