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기존 선거 이론은 잊어라|동아일보


대통령 직무평가-정당 정책-스캔들 등

선거 예측 모델서 핵심 변인으로 고려

한국에선 ‘정치 양극화’로 예측 안 먹혀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제22대 총선이 한 달도 안 남았다. 하지만 이제 우리 선거는 예측 불가다. 정치적 양극화 때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 정당의 정책, 스캔들, 공천 갈등. 어느 것도 더 이상 선거 예측에 도움이 못 된다.

필자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정당 지지율 조사 전수를 취합하여 각 조사업체의 고유한 경향성을 보정 후 정당 지지율을 추정해 오고 있다. 중구난방의 개별 여론조사들로 인한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최근 국민의힘(국힘)이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3월 9일까지 실시된 조사를 놓고 보면 국힘은 약 38.7%,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약 34.8%였다.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전화 면접은 37.5%(국힘) 대 33.2%(민주당), ARS는 40.1%(국힘) 대 36.7%(민주당)로 오차범위 내이긴 하나 국힘이 앞섰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하던 정당 지지율에서 올 2월 첫 주부터 국힘이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착시 효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3월 15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당 지지율 조사를 보면 국힘이 37%로 민주당(32%)보다 높았지만 조국혁신당(7%)을 포함하면 오히려 범민주당 계열이 앞섰다. 총선 정당 투표를 묻는 질문에서도 더불어민주연합(25%)과 조국혁신당(15%)을 합치면 국민의미래(37%)를 넘었다. 결국 양 정당의 실질적인 지지율 변화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박빙 구도에서는 거시적 데이터와 이론에 기반하여 선거를 예측하는 모델들이 관심을 받는다. 선거도 주식으로 치면 결국은 ‘펀더멘털’로 수렴하는 과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모델 예측력이 높다는 것은 결국 펀더멘털이 중요한 것이므로 대의 민주주의가 잘 작동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대부분 예측 모델에서 가장 핵심적인 변인 중 하나는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다. 하지만 양극화로 인해 대통령 평가 자체가 진영논리에 따라 극심하게 갈린다. 앞서 언급한 3월 15일 발표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힘 지지자의 89%, 민주당 지지자의 6%가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 평가했다. 무려 83%포인트 차이였다. 지난 총선을 한 달여 앞두었던 2020년 3월 2주 차 한국갤럽 주간 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층의 84%, 미래통합당 지지층의 6%가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 평가하여 78%포인트 차이였다. 반면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1월 지지율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은 61%, 공화당 지지층은 6%가 조 바이든 대통령을 긍정 평가하여 약 56%포인트 차이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치 양극화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마저 전망되는 미국도 한국보다는 진영논리가 훨씬 덜했다.

‘스캔들’도 선거 예측 모델에서 중요하게 고려된다. 최근 인천 계양을 여론조사를 보면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표가 최소 3%포인트(YTN·엠브레인퍼블릭 9∼10일 조사)에서 17%포인트(JTBC·메타보이스 10∼11일 조사)까지 국힘의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원희룡 후보에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 양극화 앞에서는 사법 리스크도 예측력이 없다. 자서전 출판을 위해 기밀 서류를 사저에 보관하다 문제가 된 바이든 대통령이 특검의 불기소 결정에도 재선 가능성에서 멀어지고 있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민주당 내 공천 갈등 관련 보도가 연일 이어지지만 조국혁신당이 잠재적 이탈층을 전수 흡수하고 있어 선거에 미칠 영향은 미미해 보인다. 조국혁신당 출범 당시 젊은층의 반발을 우려한 몇몇 민주당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극화된 정치 환경에서는 기우였다. 사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 지지율을 살펴보면 당시 소위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시기에도 견고히 유지되었다.

박빙에 예측 모델은 무용지물이니 또 관심이 가는 것은 ‘숨은 표’다. 과연 있을까. 지난 대선에서 이 대표 지지가 많았던 2030 여성들의 동 연령대 남성들 대비 여론조사 응답률이 절반에 불과하여 ‘샤이 이재명’ 존재를 예고했다. 3월 9일까지 실시된 여심위 등록 조사 550여 건을 살펴보면 지난 대선만큼 심하지는 않으나 유사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것이 민주당과 국힘 중 누구의 ‘숨은 표’ 존재를 시사하는지는 ‘신의 영역’이다.

필자가 배웠던 기존의 선거 이론은 이제 잊어야 할 듯하다. 모든 모델은 ‘세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는데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극단적 정치 양극화 때문이다. 이런 지형에서는 정보화된 유권자들이 더 나은 후보를 선출하는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작동 불가능해 보인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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