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처럼 웃다 보면[이은화의 미술시간]〈305〉|동아일보


당나귀 귀가 달린 후드 상의를 입은 남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왼손은 얼굴 반쪽을 가렸고, 오른손은 안경을 들었다. 왼팔로는 얼굴 형상이 달린 지팡이를 안았다. 옷은 겨자색과 붉은색의 이중 색이고 머리에 쓴 후드 중앙에는 공룡처럼 돌기가 달렸다. 이 우스꽝스러운 복장의 남자는 누구고 그는 왜 이리 웃고 있는 걸까?

이 그림의 제목은 ‘웃는 바보’(1500년경·사진), 서명은 없지만 15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했던 화가 야코프 코르넬리스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만 보면 지능이 떨어지는 사내를 그린 것 같지만 차림새는 광대 복장이다. 바보 흉내를 내며 관객을 웃기는 광대인 것이다. 왼팔에 낀 나무 지팡이는 ‘마로테(Marotte)’라는 소품용 막대기로 끝에 바보의 머리가 조각돼 있다. 아마도 관객들을 즐겁게 할 용도로 만들어졌을 테다. 허공에 휘두르기도 하고 바닥을 두드려 주의를 집중시키기도 하고 특정인을 쿡쿡 찌르기도 하면서 말이다. 오른손에 든 안경도 유리알이 없어 장식용 소품으로 보인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얼굴을 가린 손과 그의 웃음이다. 일반적으로 너무 놀랍거나 끔찍하거나 민망한 장면을 목격하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게 된다. 호기심에 손가락 사이로 엿볼 수는 있다. 한데 이 광대는 왼손으로 얼굴 반만 가린 채 정면을 응시하며 대놓고 웃고 있다.

네덜란드 속담에서 ‘손가락 사이로 본다’는 건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을 허용하거나 보고도 못 본 척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어쩌면 그림 속 남자의 웃음은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하는 상황에서 터져 나온 자조일 수 있다.

바보의 웃음은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행복과 슬픔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헛웃음은 세속적 욕망의 추구가 헛된 것임을 상기시킨다. 화가는 바보처럼 껄껄 웃다 보면 분노와 슬픔, 절망도 다 지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은화의 미술시간

왕의 심판[이은화의 미술시간]〈304〉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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