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로의 ‘학대’ 연작[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33〉|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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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그림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게르니카의 비극을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2023년에 세상을 떠난 콜롬비아 화가이자 조각가인 페르난도 보테로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열두 살의 모나리자’로 유명한 그는 무엇이든 뚱뚱하게 그렸다.

그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언급한 것은 예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 잊기 시작할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에게 환기해 주니까요.” 1937년 4월 26일, 나치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게르니카 마을을 폭격해 2000여 명을 몰살시켰다. 그러나 분노와 슬픔과 두려움을 격정적으로 형상화한 피카소의 그림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지금쯤 그 비극을 까맣게 잊었을지 모른다.

그것은 그가 ‘아부그라이브의 학대’ 연작을 그리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였다. 그는 2003년, 미국 군인들이 이라크인 포로들을 학대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고 분노했다. 치욕과 모멸을 당하는 포로들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것이 1년 반에 걸쳐 80여 점의 그림들을 그리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피카소가 나치의 만행을 뉴스로 접하고 ‘게르니카’를 그리기 시작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보테로는 그 시기를 “삽입구”나 “괄호”라고 했다. 그 그림들이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야 하는 화가가 인간이 인간을 학대하는 추한 장면들을 그리는 것이 정상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유럽과 달리 미국의 미술관들은 눈치를 보며 그의 그림을 전시하기를 꺼렸다. 그때 캘리포니아의 버클리대가 나섰다. 보테로는 대학 도서관에서 성공적인 전시회를 마치고 60점의 그림을 대학에 기증했다. 지금도 법학전문대학원 복도에는 넉 점의 그림이 상시 전시되어 있다. 대학원장이었던 크리스토퍼 에들리 교수의 말처럼 “법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무법적인 도덕적 진공 상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환기하기 위해서다.” 예술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

딱딱한 도자기[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32〉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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