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없는 중대재해법, 소기업 확대 적용은 무책임[동아시론/정진우]|동아일보


법 시행 이후 사망 사고 사실상 증가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혼란 불보듯

모호한 법 정비하고 집행 최소화해야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50명 미만 사업장(소기업)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에 대한 여야 합의가 결렬됐다. 한쪽에선 이 법은 그저 좋은 법이니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경영에 많은 부담이 되니 유예해야 한다는 공방만 있었다. 이 법이 과연 중대재해 감소에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한 분석과 논의는 없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로 중대재해가 줄지 않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사망 사고가 2022년에는 되레 늘었고, 2023년에는 소폭 줄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망 사고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 현장이 반 토막 나고 제조업 생산이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 감소한 사실을 감안하면 사망 사고는 증가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법 시행 전 5년간 산재예방 행정 인력과 예산이 2.3배, 안전보건공단 직원이 700여 명이나 증가한 점까지 고려하면 이 법은 중대재해를 줄이기는커녕 늘리는 쪽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참담한 실적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부터 예견됐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문가조차 알기 어려운 모호한 규정이 많기 때문이다. 주무 부처조차 제대로 답변을 못 하는 사항이 수두룩하다. 주무 부처와 정당 자신들도 이 법의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서 특히 소기업에까지 그대로 강제하는 건 ‘내로남불’ 아닌가.

의무 주체와 이행 범위의 모호성은 형식적 안전으로 치닫는 결과를 낳는다. 게다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이 중복되는 부분이 많고 동일 사항에 대해 의무 주체가 충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군기’는 잡을지언정 재해 예방으로 이어질 수 없는 구조다.

다음은 실제 발생했고 앞으로도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사례다.

#1 소기업 A가 기계 수리를 중견기업 B에 맡겼다. 수리 작업에 대한 안전 조치를 누가 해야 하는가. 정부는 개별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무책임한 답변을 한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수사관의 입맛에 따라 해석된다.

#2 A기업이 B업체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의뢰한 경우, 설치 작업 중 안전 조치는 A가 해야 하는지 B가 해야 하는지 A와 B가 다 같이 해야 하는지 정부는 구체적인 답을 주지 않는다.

#3 원청 구내에서 하청 근로자가 재해를 입은 경우 재발 방지 대책을 산업안전보건법에선 하청이 수립해야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에선 원청이 수립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느 법에 따라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4 A기업이 시설 보수를 외부업체 B에 위탁했다. B의 관리감독자에 대한 안전평가는 A가 해야 하는지 B가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부는 답이 없다.

이처럼 법 자체에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이 결여된 상태에선 정부가 아무리 많은 지원을 하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금까지의 중대재해처벌법 이행 지원 컨설팅에 기업들이 별 효과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내는 이유다.

소기업은 산업안전보건법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서류 작업이 많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추가로 적용하는 것이 재해 예방에 도움이 될까. 기본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이라도 잘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예방의 실효성에는 뒷전인 사람들이 많다. 실효성은 따져 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이 법을 소기업에도 적용하자는 건 무책임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엄벌 중심의 엉성한 법이 재해 예방에 효과가 있다면 북한, 중국, 아랍 국가들은 이미 재해 예방 선진국이 됐을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폐해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행정자원을 예방보다 처벌에 과도하게 집중시켜 자원을 낭비하는 문제, 종전에도 처벌받아 온 중소기업(사장)에 처벌이 집중되는 문제, 공포 분위기와 법의 모호성에 편승해 안전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된 문제 등등.

하루빨리 ‘엄벌이 곧 정의’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기업까지를 염두에 두고 법의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산업안전보건법의 대폭적인 개정을 전제로 중대재해처벌법을 폐지하거나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특히 법의 모호성을 해소하고 두 법의 착종을 없애야 한다.

법 정비 전에라도 자의적 법 집행과 법 해석을 최소화해야 한다. 현재는 ‘법치’가 아니라 법을 무기로 한 수사기관의 ‘인치’가 횡행하고 있다. 수사기관은 그 속성상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지금 이대로가 좋겠지만, 소기업일수록 그 폐해는 심각할 것이다. 대통령이 현재의 무질서를 바로잡는 데 나서야 하는 이유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소기업까지 적용되는 지금부터는 더 이상 진영 논리, 보여 주기와 수사 편의주의가 우선돼선 안 된다. 예방의 실효성이 본질임을 명심해야 한다.

광화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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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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