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북 군수 공장들, 러 수출용 포탄 생산 위해 풀 가동”|동아일보


속도내는 북-러 군사밀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보스토치니=AP 뉴시스

《“최근 북한 군수 공장들이 ‘풀(full) 가동’ 상태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 주민은 물론 군인까지 차출될 정도다.”

최근 북한 자강도와 평안북도의 군수공장들이 전례 없는 노동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고 대북 소식통이 6일 전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완제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재래식 탄약을 생산할 수 있는 ‘탄약 생산 플랜트’를 수출한 뒤 현지에서 조립하도록 하는 모습도 목격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고도예 정치부 기자고도예 정치부 기자

북한 군수공장의 노동자 부족 문제는 최근 들어 불거진 이례적인 일이다. 발전 설비가 노후돼 고질적인 전력난을 겪는 북한은 그동안 기존 군수공장조차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지난해 북-러 정상회담 전후로 수출용 포탄 공급량을 크게 늘리면서 생겨난 변화로 해석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 들어 주요 군수 공장을 현지 지도하면서 “수요에 맞는 많은 무기를 생산할 발전된 생산 공정” 등을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 “김일성-스탈린 시절 관계 연상”

이처럼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올해 들어 더욱 심화되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고위급 교류도 지난해 7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의 방북 이후로 한 달에 한 번 간격인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장관급)은 신년 들어 혈맹인 중국을 제치고 먼저 러시아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 일정을 조율하고 나섰다. 한 외교 소식통은 최근 북-러의 밀월 관계를 두고 “김일성과 스탈린 시절에 버금갈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외교적 쇼’에 불과했던 북-러 동맹이 주고받을 것이 확실한 ‘전략 동맹’으로 변화한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 소모전으로 접어든 지난해부터였다. 하루에만 수천 발의 포탄을 쏘는 포격전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로서는 재래식 무기인 포탄과 탄약이 절실해졌다. 이에 러시아에 대한 공개 지지 입장을 꾸준히 밝혀온 북한이 탄약을 조달할 통로로 떠오른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7월 전시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국방 수장인 쇼이구 장관을 평양으로 보내 북한의 무기 전시장을 둘러봤다. 이후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러시아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을 하면서 군사 협력의 정점을 찍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1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이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8월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에 100만 발 이상의 포탄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러시아가 포탄을 제공받는 대가로 군사 정찰위성 등 첨단 무기 분야에서 북한의 ‘일타 강사’ 역할을 하고 있는 정황도 포착됐다. 지난해만 두 차례 군사 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했던 북한은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해 11월 3차 발사에 성공했다. 북한이 3차 발사에 성공한 배후에는 러시아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이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올 1월 최 외무상의 방러 일정을 수행한 북한 수행원이 들고 있던 서류에 ‘우주기술 분야 참관 대상 목록. 우주 로케트 연구소 쁘로그레쓰’라는 내용이 적힌 사진도 공개됐다. ‘쁘로그레쓰(프로그레스)’는 러시아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겸 우주 로켓인 소유스 시리즈 개발에 관여한 국영기업이다.

북한이 ‘5대 국방 과업’으로 내세운 핵잠수함 개발과 관련해서는 러시아가 기술을 이전하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정부 안팎에서 우세하다. 한 정부 소식통은 “지난해 정상회담 때는 ‘지각대장’ 푸틴이 김 위원장을 30분 먼저 와서 기다릴 정도로 러시아가 더 절박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며 “최 외무상이 새해 들어 모스크바로 달려간 건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기 전에 또 다른 핵심 기술들을 제공받고 싶어 몸이 달아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이 푸틴 대통령의 방북 시기에 대해 “대선 이전에는 계획이 없고, 장기적인 차원”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종수 전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은 “지금의 전쟁 상황을 보면 푸틴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푸틴이 가면 김정은에게 선물 보따리를 줘야 하고, 선물을 안 주면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노벽 전 주러시아 대사는 “푸틴 대통령이 올 3월 대선을 치른 뒤 북한을 따로 핀포인트해서 갈지, 주변국에서 열리는 회의 등의 일정을 계기로 가게 될지 선택이 남았을 것”이라고 했다.

● 우크라전 이후에도 북-러 전략동맹 발전 가능성

노동자 파견 확대를 두고도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북한과 러시아는 앞으로 군사 외에 노동자 파견 등 분야에서도 협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는 지난해 러시아에서 부족한 근로자 수를 480만 명으로 추산했다.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 노보시비르스크주 당국자도 지난해 말 “최대 2000명의 북한 노동자를 우리 지역에 보내 달라고 당국에 요청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청년층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거 투입돼 재건 작업을 맡을 노동자가 부족한 러시아는 지난해 북한 국적자에 대해 비자 취득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노동자 파견 규모 확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러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동북아 지역에서 한미일 협력을 견제하기 위해 외교적 카드로 서로를 이용할 유인이 충분하다는 시각도 있다. 서태평양과 동해에서의 미국 견제에 촉각을 곤두세운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핵미사일 기술 이전 가능성을 부각시켜 미국을 견제하려 한다는 해석이다. 북한으로서는 러시아와의 협력 가능성을 강조해 미국을 압박하고, 교역량 95%를 차지한 중국에 대한 외교적 의존성을 낮추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북-러 간의 밀월이 북-중-러 동맹이라는 신냉전 구도로 번질 가능성은 현재로서 크지 않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미중 관계 등 서방과의 갈등 관리 등을 염두에 둔 중국이 신냉전 구도를 형성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장은 중국이 북, 러와 밀착해 진영화되는 것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다만 향후 미중 전략 경쟁의 수위와 강도에 따라 중국이 최소한 북-러 협력 구도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되기 전에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며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은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와 기술을 제공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레드라인을 강경하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북-러 밀착 상황에서) 단순히 러시아와 대화하는 것만으로는 악재를 헤쳐나갈 수 없다”며 “미국, 중국, 러시아에 대한 통합되고 조율된 ‘한국형 좌표’를 가지고 우리 정책이 러시아와의 외교 공간을 어느 정도로 허용하고 있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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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예 정치부 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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